2013 철도파업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고찰]


[철도파업] 혹시나 했는데....역시나.....


2013 철도 파업을 지켜보다가


2009년 철도파업 당시에 내가 올렸던 포스트를 우연찮게 읽게 되었다.

내가 이런 글을 올렸었나...


200년 전이나

4년 전이나

바뀐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미래에도 큰 틀에 있어서 바뀔 것은 없을 것이라 생각된다.


'법 앞의 평등'도 순진한 생각에 다름 아니다.


이기적이긴 하지만

지금 나의 머리 속엔 '모든 것의 포기'와 '오직 현금' 뿐...


Fortuna Redux 2013 coin 포르투나 리덕스 기념주화 - 2 [기념주화]






포스트에 사진이 다 올라가지 않아서 추가로 작성한 글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 글을 참조해주세요.

Fortuna Redux 2013 포르투나 리덕스 기념주화 [기념주화]









폴란드 조폐국에서 제조하고

영국령 니우에섬 (Niue Island)에서 발행한

Fortuna Redux 2013 coin (포르투나 리덕스 2013 기념주화) 입니다.


원통 모양 기념주화로는 공식적으로 세계 최초입니다.

(그래서 비싼 가격에도 과감히 투자한 계기가 되었네요.)

(추가)

http://news.coinupdate.com/mint-of-poland-releases-fortuna-redux-cylindrical-coin-1854/

폴란드 조폐국 설명에 따르면

주화의 지름과 높이 비율이 전례 없었던 경우라고 하네요.

(첫 문장만을 대충 읽고 해석해서 착각이 있었습니다. ^^;;;)

일반적으로 주화의 높이는 지름의 5~10 퍼센트 정도인데

이번 포르투나 리덕스 주화의 경우 70%에 달한다고 합니다.

덕분에 주화 표면의 새김이 일반적인 주화보다 대략 2배 정도 (200퍼센트) 많다고 합니다.

그외에도 미세문자 (micro-text)와 미세새김 (micro-engraving)이 여러군데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http://hucy.egloos.com/3036283

http://hucy.egloos.com/3036279

여기로 가서 사진을 누르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네이버가 사진 크기 제한이 있어서 미세문자와 미세새김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네요)




그리고 이 주화는 6 oz로 환산하면 170g이 넘는 질량을 지니고 있습니다.

보통의 1 oz 짜리 기념주화 6개에 해당합니다.


더불어 유튜브 영상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n0mEHLOZM8&feature=player_detailpage

원통형 주화의 옆면 새김을 위해 어떤 시도를 했는지가 자세히 나옵니다.

그외에도 레이저 각인 같은 첨단 기술을 아낌없이 적용했네요.

폴란드 조폐국에서 큰 시도를 했습니다.

옆면 새김을 위해 총 4개의 틀을 이용했는데

제 걱정대로 그 이음새 부분의 마감이 약간은 부족합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디자인도 매우 훌륭하고

앞으로 제가 겪어야 할 '인생여행'에 헤르메스의 축복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습니다.

(헤르메스 - 그리스로마 신화의 전령의 신으로 '상업'과 '여행'의 수호신이었음)

전세계 2500개 한정판입니다.

여러분도 Fortuna Redux!!! (여행 후 집으로의 안전한 귀환을 의미하는 라틴어)


(추가)


주화 뒷면의 헤르메스 새김은


Giambologna의 1580년 디자인에서 참고한 것 같습니다.


http://www.wga.hu/html_m/g/giambolo/2/1mercure.html


http://en.wikipedia.org/wiki/Giambologna


구글에서 'The flying Mercury'로 검색하니까 많이 나오네요.


총 4가지 타입이 만들어졌다고 나옵니다.


첫 번째 조각은 날개가 없는 매우 큰 조각이라고 나옵니다.


두 번째 브론즈는 신성로마제국 황제 막시밀리안 2세에게 외교적인 선물로 보내졌다고 합니다.


황제 막시밀리안 2세의 여동생(?) 지오반나와 메디치가의 프란세스코의 결혼을 주선하기 위해 코시모라는 사람이 보냈다네요.


전령의 신인 헤르메스는 막시밀리안 황제의 수호신이고,


브론즈의 포즈는 1551년의 레오네 레오니가 제작한 막시밀리안의 메달의 것을 기반으로 했다네요.


4번째 작품은 1580년에 완성했고 메디치 가문의 분수대에 장식이 됐다고 합니다.


이번 기념주화의 도안은 여기서 참고한 것 같습니다. (제 추측입니다.)


제피르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공기를 밟고 손가락은 쥬피터 (제우스)신을 가리키고 있는 모습이라고 합니다.


분수대의 물 위에 설치되어 있어서 마치 물위에 떠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셀리니의 페르세우스 (Cellini's Perseus)라는 작품에서 영향을 받았으나 훨씬 역동적 포즈라고 하네요.


강상중 '살아야 하는 이유' [감상]

살아야 하는 이유
강상중 지음, 송태욱 옮김 / 사계절출판사
나의 점수 : ★★★★


강상중 교수의 '살아야 하는 이유'를 읽으면서 기록한 책의 구절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점이 있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 다른 모습으로 불행하다."


구약성서 '욥기'

"마침내 욥이 입을 열어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며 부르짖었다.

내가 태어난 날이여, 차라리 사라져 버려라.

사내아이를 배었다고 하던 그 밤도 사라져 버려라.

그날이여, 어둠에 뒤덮여 위에서 하느님이 찾지도 않고 아예 동트지도 마라.

칠흑 같은 어둠이 그 날을 차지하여, 구름으로 덮고 해는 그 빛을 잃게 하여 그 날을 공포 속에 몰아넣어라."


아들의 질문

"왜 태어난 것인가? 왜 살아야만 하는 것인가? 

왜 세계에는 행복한 자가 있고 불행한 자가 있는가?

인생에 의미는 있는가?

왜 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인가?"

"세계가 망할까 내가 망할까?

애초에 이 세계는 불평등과 부정으로 가득 차있고, 

정직한 자가 오히려 심한 꼴을 당하며,

부정한 사람들이 행복의 향연에 도취해 있고, 

한 꺼풀만 벗기면 시기와 질투, 선망과 멸시, 적의와 증오가 소용돌이치는 세계가 아닌가.

이런 세계에 살 가치가 있는가.

왜 신은 이렇게 하찮은 세계를 창조한 것일까?"

"세계의 비참이 자신들 바깥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세계의 비참은 자신들 안에 있다.

행복한 자,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자는 결코 알지 못한다."


"이 세상에 살아가는 모든 것, 언제까지고 건강하기를, 안녕"



빅토르 에밀 프랑클, 절멸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

"그럼에도 삶에 대해 예라고 말하려네"


프리드리히 니체

"행복을 발견한 최후의 사람들"

"행복을 찾아냈다"고 말한 최후의 인간 (마지막 인간"



미국의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의 '거듭나기 (twice born)'

나쓰메 소세키 '인간이란 무엇인가'



[1장 사람은 왜 살아가는가?]

나쓰메 소세키, 막스베버


고체적 근대 (solid modernity)와 액상화하는 근대 liquid modernity, 지그문트 바우만 Zygmunt Baumann, 1925~

나스메 소세키 '그 후'의 다이스케, 고등유민 (요즘의 니트족, 고등실업자)


막스 베버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자본주의의 막장에 나타나는 인간의 형태 '정신 없는 전문인', '가슴 없는 향락인'

무 nicht인 존재


자본주의가 극단적으로 발전하여 영리 활동에서 종교적/윤리적 의미가 사라지고 순수한 경쟁의 감정과 결부되어 스포츠의 성격을 띠게 됨



'변신론'

독일의 철학자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

그리스어의 신 theos와 정의 dike를 합성한 언어

theodicy

전능한 신이 세계를 창조했는데 왜 악이 존재하는가,

즉 신의 선성과 세계에 악이 존재하는 것 사이의 근원적인 모습 (윤리적 비합리)를 신에게 책임을 돌리지 않고 논증하는 것

'윤리적 비합리성'을 신의 섭리로 논증하려는 두 가지 입장, '행복의 변신론', '고난의 변신론'


'행복의 변신론'

행복한자와 불행한자가 있는 것은 신의 뜻을 따르느냐 아니냐의 차이로 주어진 것


'고난의 변신론'

내세에 신의 나라가 있고, 이 좁은 문에 들어갈 수 있는 이는 '행복재'를 뺴앗긴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나니"



카를 힐티 Carl Hilty 1833~1909

"의식에 눈뜬 최초의 순간부터 의식이 사라질 때가지 가장 열심히 찾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역시 행복의 감정"


"이 지상의 현실에서 행복은 찾아지지 않는 것이라고 완전히 확신"한 경우, 이것만큼 "고통스런 순간"은 없다.



알랭 Emile Auguste Chartier, 1868 - 1951

'행복론'

"슬픔의 맛을 음미하고 있을 뿐"인  "우울증에 빠진 사람들"

"일종의 상상력이라는 아편을 투여"한다 해도 "인간의 행복을 이것저걱 열거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있다"




[2장 왜 이토록 고독한가]

소세키의 고민

인간의 '자의식' 문제

자아, 자기 본위, 자각심, 자기의식 self-consciousness, 개인 주의, 자기 자신

인간의 문명 안에서 획득한 예지이기는 하지만 양날의 칼이기도 했다.

인간에게 커다란 불행을 초래

인류 역사상 가장 살기 힘든 삶을 살아야 하게 됨.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구샤미 선생의 말


요즘 사람들은 자기와 타인의 이해관계에 깊은 골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는 것이네.

이러한 자각은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하루하루 예민해지기 때문에

결국에는 일거수일투족도 자연스럽게 할 수 없게 되는 거네.

윌리엄 어니스트 헨리라는 사람이 스티븐슨을 평하기를,

그는 거울이 걸린 방에 들어가 그 앞을 지날 때마다 자기 모습을 비춰 보지 않으면

성이 차지 않을 만큼 한시라도 자기를 잊은 일이 없는 사람이라고 했네.

오늘날의 추세를 잘 표현하고 있지 않은가.

잠을 자도나, 잠을 깨도 나, 가는 곳마다 이 내가 따라다니니 인간의 언동이 인공적으로 곰상스러워질 뿐이네.

자신도 갑갑해지고 세상도 고통스러워질 뿐이지.

그러니 마치 맞선을 보는 젊은 남녀 같은 심정으로 아침부터 밤까지 살아야 하는 거네.




근대 이후의 사람들은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등의 자아와 관련된 것들을 일일이 스스로 생각하고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의 자의식이 한없이 비대해져 가고 말았다.

각 개인은 분리되어 연결점도 없고, 공통의 이해도 없는 상태라 서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각자의 내면적으로는 망상이 비대해지고, 대인관계에서는 의심암귀가 되어 신경을 소모하게 되었다.


'마음' 선생님의 말

"자유와 독립과 자아로 가득 찬 시대에 태어난 우리는 그 대가로 모두 이런 외로움을 맛볼 수밖에 없네"




윌리엄 제임스

근대 문명 안에서 개인주의가 진전되고 사람들의 고독이 깊어지며 또한 자의식이 점점 비대해져 가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옛날보다 자각적으로 더 열렬하게 종교를 찾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간단히 말하자면 종교란 인간의 자기중심주의 역사에서 기념할 만한 1장인 것이다."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




빅토르 에밀 프랑클, 유대인 정신의학자

'고민하는 인간'의 개념 제안, 호모 파티엔스

"행복한 사람은 인간과 우주의 심원한 관계를 이해할 수 없다."


비극에 휩쓸려 불행한 상태에 있는 사람일 수록 우주에 존재하는 깊은 진리를 더 쉽게 엿볼 수 있다.





윌리엄 제임스

아슬아슬한 갈림길에 맞닥뜨린 인간은 '종교인'이 되거나 '예술가'가 된다.

철저하게 자기를 부정하고 지옥 같은 고민에 빠져드는 유형 '종교형'

절대적으로 자기를 긍정하고 그것을 작품으로 표현하여 승화하는 유형 '예술가형"




소세키 '문'의 소스케가 불교에 귀의하려고 하지만 부처에 몸을 맡기지 못하는 상황의 묘사


그는 뒤를 돌아봤다. 

원래의 길로 돌아갈 용기는 도저히 낼 수 없었다.

그는 앞을 바라봤다.

앞에는 견고한 문이 어디까지고 전망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는 문을 지나는 사람이 아니었다.

또 문을 지나지 않아도 되는 사람도 아니었다.

요컨대 그는 문 아래에 우뚝 선 채 날이 저물기를 기다려야 하는 불행한 사람이었다.




[3장 다섯 가지 고민거리]

돈, 사랑, 가족, 자아의 돌출, 세계에 대한 절망



베버

근대 합리주의 안에서 인간에게 남겨진 영혼을 움직이게 하는 숭고한 존재로서 

종교와 예술과 사랑 (에로스)을 환영으로 보았다.

사랑이나 에로스 같은 것은 단독으로 매력을 발산하는 것이 아니라

작용과 반작용처럼 경제적인 것과 등을 맞대고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가족

소세키

'사회의 최소 단위 공동체'가 '사회의 최소 단위 아수라장'임을 간파했다. 


자아의 돌출

자신답게 있고 싶다, 자신을 어필하고 싶다 등의 아주 강한 자기 현시욕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은 자신의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른다는 모순

그래서 '나는 나'로 초연하게 있을 수 없고, 타자의 시선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리며, 그 결과 신경과민에 빠지게 된다.



세계에 대한 절망

파스칼

"이 무한한 공간의 영원한 침묵이 나를 전율케 한다."

우주 안에 자기 혼자 남겨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불안한 마음

세계에 대한 절망이란 이런 느낌

'실존적 공허감'에 빠져 자신의 인생에서 의미를 찾을 수 없고, 

세계로부터 그 정신적인 윤곽이 사라지고 자신이 무로 미끄러져 떨어지는 공포에 시달리게 되는 것

왜 이런 공포에 시달리는가?

자신과 바깥 세계의 연결이 끊어졌기 때문

'지평의 상실'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게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지평'을 잃어버렸으므로 심한 현기증을 동반하는 불안감이 덮치는 것

이런 사람들은 자연의 숲이나 골짜기를 자신의 소유물처럼 느끼고, 

때로는 자기 자신의 신이라 말하기도 한다.

자아가 돌출하여 세계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잃어버리면 이런 느낌이 된다고 한다.

소세키 소설의 '행인'의 이치로가 이런 인물




[4장 고민으로 둘러싸인 시대]



[5장 진짜 자기를 찾는다는 것]

윌리엄 '자아의 원천 Sources of the Self'

자신의 인생에 얼마만큼의 의미가 존재하는지는 자기 자신의 표현력에 의존한다는 것을 강하게 의식하게 되었기 때문


소세키 창작 메모 '단편'

천하에 무엇이 약이 되느냐 하면 자기를 잊는 것보다 마음 편한 것은 없고 무아지경보다 기쁜 것은 없다.

예술 작품이 소중한 것은 황홀하여 한순간이라도 자신을 잊고 자타의 구별을 잊어버리게 하기 때문이다.





[7장 믿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인간의 궁극적인 물음, 그것은 바로 인생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나는 왜 태어났고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 것인가?

어디에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어차피 끝날 인생인데 왜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

이유 따위는 없지 않을까?

인생 따위는 무의미하지 않을까?


얀네 텔러 Janne Teller, 1964~, 덴마크 아동문학자 '아무 것도 아니야 ,Intet' (2000)

테링이라는 작은 동네, 중학교 1학년 학생들

어느날 한 소년이

"의미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니, 뭘 해도 무익하다"며 학교에 가지 않게 된 데서 시작한다.

"모든 것은 끝나기 위해 시작되는 거야. 너희도 태어난 순간부터 죽어 가기 시작한 거지."

"살아 있다는 건 전혀 무익한 가지."

"모든 게 그저 연극일 뿐이야. 살고 있는 척하고 있을 뿐이지."

"의미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왜 지금 당장 인정하지 않는 거야. 

인정하고 무의 세계를 즐기면 되잖아."


학생들은 '의미의 산'을 쌓지만 결국엔 그 소년에게 린치를  가해 죽이고 태워 버린다.

학생들 모두 인생의 무의미를 알았지만 인정할 수가 없었기 때문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인생의 의미 유무보다 '보기에 좋은 뭔가'가 되어 성공하는 것이고,

그것을 위해서는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척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

그래서 이런 점들을 마구 들춰내는 소년의 입을 죽여서 막아야 했다.


베버, 종교사회학

인생의 의미에 대해 세계의 종교가 각각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답을 냈는지에 대한 탐구


소세키, 문학을 통해 일상 안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함


<결론>

인생에서 얼마간의 의미를 찾아낼 수 있느냐 없느냐는 그 사람이 진심으로 믿을 수 있는 것을 가질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

뭔가를 믿는다는 것은 믿는 대상에 자신을 내던지는 일이고, 그 대상을 긍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이기 때문

그것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비로소 자기 안에서 헛돌기만 하던 고리 같은 것이 뚝 끊어지고 의미가 발생하는 것

이에 반해 믿을 수 있는 것이 없으면 저 혼자 제자리를 빙빙 돌고 있을 뿐이기 때문에 의미가 생기지 않음

사람의 인생은 '자신의 세계'만으로는 결코 완성되지 않도록 만들어져 있기 때문



소세키 소설 '행인'의 이치로


"죽든가 미쳐 버리든가 아니면 종교에 입문하든가, 내 앞길에는 이 세 가지 밖에 없어."

형님은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형님의 얼굴은 오히려 절망의 골짜기로 향하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종교에는 입문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죽는 것도 미련에 저지당할 것 같고. 그렇다면 뭐 미쳐 버리는 거지.

하지만 미래의 나는 제쳐두고, 현재의 나는 제정신일까. 벌써 어떻게 된 게 아닐까.

난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어."


"난 죽은 신보다 살아 있는 인간이 더 좋아."

형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괴로운 듯이 숨을 헐떡거렸습니다.






세계의 그 무엇과도 전혀 연결되어 있지 않은 궁극의 개인

소세키의 '마음'의 선생님

부모도 죽었고, 친척과도 연을 끊고, 고등유민이라 '사회'와도 접점이 없고

단 한 명인 '친구'를 죽음으로 몰았으며,

그래서 유일한 가족인 아내와도 마음을 나눌 수 없게 된 궁극의 개인

선생님이 나에게 집요하게 확인하는 '진지함'


나는 죽기 전에 단 한 사람이라도 좋으니 다른 사람을 신용하고 죽고 싶습니다. 

당신은 그 단 한 사람이 되어줄 수 있습니까.

되어줄 수 있습니까.

당신은 진심으로 진지합니까.

 

베버

지의 합리화와 전문화에 의해 세계의 의미가 뿔뿔히 해체되어 가는 가운데

학문에 종사하는 사람이 가장 마음을 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지적 성실'이라고 했다.


도킨스 '만들어진 신 The God Delusion'

히친스 '신은 위대하지 않다 God Is Not Great: How Religion Poisons Everything'

두 사람 모두 종교를 넌센스의 극치라고 규정

(요지) 종교는 변변한 일을 하지 않는다. 종교는 애초에 세계에 대해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했다. 

종교는 정신적인 지주 혹은 윤리적인 긍정이라 말하지만 그런 것을 찾으니까 사회적 병리가 생기는 것이다.



테리 이글턴 

'신을 옹호하다: 마르크스주의자의 무신론 비판 Reason, Faith, and Revolution: Reflections on the God Debate'

(요지) 위의 두사람을 '디치킨스'라고 부르고

그들이야말로 틀렸다. 기독교는 세계를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다. 

신은 필요해서가 아니라 세계를 사랑하기 때문에 세계를 창조했다.

단지 그것뿐이다.

그리고 과학은 세계의 법칙을 밝히지만 왜 세계가 생겼는가에 대해서는 설명할 수 없지 않느냐고 반박함

 



[글을 마치고]

테리 이글턴 '신을 옹호하다'

인간이 덧없이 죽을 운명에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어디까지나 겸허히 인간적이 것을 긍정하다.

'비극적 휴머니즘'


아쿠타카와 류노스케 '두자춘'

뭐가 되어도 인간다운, 정직한 생활을 할 생각입니다.

에반게리온 큐 간단 감상문 [감상]

에반게리온 : Q
오가타 메구미,하야시바라 메구미,미야무라 유코 / 안노 히데아키
나의 점수 : ★★★★★

간만에 감동!!!








요짤방 마음에 드는데

레퍼런스를 모르겠습니다.

이글루스에 어떤 분이 올린 글에서 허락없이 가져왔습니다.

미리 사과드립니다.



에반게리온 큐 감상하고 이글루스에 올라오는 감상글들 읽어보는 재미로 살다가

글들이 뜸해져서 저도 이렇게 하나 올려봅니다.

지금 아니면 언제 쓰겠습니까...


몰래 돌려보던 비디오 테입을 통해 처음 에반게리온을 접했던 중학생 때의 그 순간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이번 에반게리온 큐를 감상하면서 주인공들과 비슷한 시대를 공유하는 것 같다는 묘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에바 파 이후로 14년이 지나 주인공들이 28살이 되어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올해 제 나이가 서른 초반입니다.

레이 신지 아스카랑 같이 성장하고 있는 셈입니다.


에반게리온 파 이후로 이렇게 가슴설레면서 영화를 감상했던 적이 있었나 생각해 봅니다.

10주 동안 매주 시험을 보는 강행군인데, 그 와중에서도 2번이나 영화관에서 관람했습니다.

옛날 성격의 저였으면 상상도 못할 일탈입니다. --;;;

지금 당장 다음 주 시험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대부분 감상자들이 에반게리온의 설정이나 액션, 캐릭터의 성격을 중심으로 글을 올리시는데,

저는 약간 다른 쪽으로 접근해보고자 합니다.

(저는 얼마전에 루리웹의 엄디저트님이 올리신 글들을 읽고 그제서야 전반적인 내용을 이해하게 된 사람입니다. --)


제가 에바 큐를 감상하면서 개인적으로 깜짝 놀랐던 것은 

카오루와 신지의 피아노 연탄 장면과,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이야기하는 장면입니다.


저는 실력은 하찮지만, 피아노를 종종 연주하곤 합니다.

국민학교 시절부터 시작한 취미죠.

마치 신지가 첼로를 배우고 그만 하라는 사람이 없어서 계속 했다는 말을 하는데

저도 비슷한 상황이라 동질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웃음 ^^)

카오루가 반복연습을 통해서 자신이 좋아하는 소리를 찾아가면 그걸로도 충분하다는 말을 하는데

여기서 느끼는 바가 많았습니다.

처음에는 나랑 같이 피아노를 시작한 친구보다 더 잘하겠다, 선생님이나 부모님에게 인정받겠다는 이유가 컸습니다.

마치 아스카가 에반게리온을 조종하는 동기와 유사하죠.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저 또한 카오루가 말하는 것을 목표로 연주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에 교환학생으로 갔을 때의 일입니다. 

그 전까지는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피아노 연주에 지나칠 정도로 집착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수강 과목을 하나라도 놓치면 졸업을 제시기에 못한다는 압박감과 영어에 대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던 시기였습니다.

거의 현실도피 수준이었습니다.

순수하게 오로지 나 자신만이 만족하는 소리를 목표로 맹연습하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전혀 처음보던 백인여자에가 연습실에 들어와선 제 연주를 듣고 싶다는 말을 하더군요.

당시 연습하고 있었던 베토벤 월광 3악장을 연주했습니다.

물론 긴장해서 연주 자체는 엉망진창이었죠.

하지만 온 힘을 다해서 연주했습니다.

연주가 끝나니까 정말 잘 들었다, 멋지다는 말과 함께 저를 꼭 안아주더군요.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어도 좋으니 최선을 다해보고 싶었고,

그에 대해서 그 여자애가 나의 진심을 이해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이렇게 교환학생 당시에 저를 살려준 과목이 '피아노 레슨', '일반수학'이었습니다.

공통적인 언어를 쓰기 때문에 소통에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곳에서 교수님이나 외국인 친구들에게 인정받는 계기가 될 수 있었죠.
 

보통 주변 사람들이 제가 피아노 연주를 취미로 한다고 하면 별난 취미라거나 신기하게 생각하는데

이렇게 영화에서 공감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이래서 에반게리온은 저에게 참 고마운 작품입니다.



아마 제 블로그 글 중에 제가 중학교 때 오리온 별자리 사진을 찍어서 올린 것이 있을 겁니다.

http://hucy.egloos.com/2536923

에반게리온과는 별개로 옛날부터 우주에 대한 관심이 많았습니다. 

별자리 외우고, 별자리 이름에 대한 신화에 대해서 찾아보고, 망원경을 사서 관측을 한다거나 카메라로 찍어서 현상하고...


이번 큐에서 신지가 카오루와 밤하늘을 보면서 하는 이야기에도 많이 공감했습니다.

제가 별을 보면서 느꼈던 감정과 생각이 너무 비슷했기 때문이죠.

저 같은 경우는 종교가 없고, 오로지 자연과학적 사유방식만을 신뢰하는 사람입니다.

'인과율', '합리성', '연역법', '귀납법', '선험적 종합판단'

하지만 이런 사고 방식도 결국엔 '인간'만의 사유방식이며, 불안정한 토대에 있음을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보편 타당하면서 합리적 사고로도 '우주'에 대한 이해는 너무나 부족하죠.

저에게 있어서 우주란  '경이감', '신비감'을 주는 존재인 동시에
 
호기심 충족에 대한 열정과 동기를 주는 대상입니다. 


다만 요즘은 인간이라는 자연적 존재가 기원한 우주라는 물자체가 너무 무정하고 무심하다, 

나아가서는 잔인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카오루가 신지에게 허무와 무자비의 심연을 좋아하는 것이라고 말했는데

저도 그런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겁니다.


이번 에바큐가 지난 2011년 일본 3.11 지진에 대한 심상을 많이 반영하고 있다는 말도 들려옵니다.

제가 좋아하는 현대 철학자 중에 일본 도쿄 대학에 재일한국인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교수에 임용된

강상중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http://hucy.egloos.com/3007306

우연찮게 '고민하는 힘'으로 처음 접하고 작년 말 즈음에 출간된 '살아야 하는 이유'도 바쁜 와중에

직접 사서 샅샅이 읽어봤습니다.

교수님의 아드님이 자살한 이유와 자신이 3.11 대지진에서 받았던 충격에 대해서도 자세히 기술해 놓고 있습니다.

독일의 막스베버와 일본의 나쓰메 소세키의 사상을 바탕으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해줍니다.

(베버와 소세키 모두 전근대적 신비성을 거부하고 근대적 합리성을 바탕으로 

사람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들을 주로 함) 

더불어 이 혼란스런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도 제시해 주고 있죠.


이야기가 샛길로 빠지고 말았습니다만...

이번 에파 큐는 고단한 학업 와중에 잠시나마 삶을 즐기고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준 저에게는 정말 고마운 작품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레이에게는 미안하지만 아스카와 신지를 응원하고 있습니다.

아스카가 14살이나 더 먹은만큼 꼬마 신지를 잘 키우고 잡수셨으면 인도해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한 가지 더 언급하자면

제가 지금 하고 있는 공부를 저는 저 자신의 '호기심' 충족을 위해서 시작했습니다.

매우 이기적인  선택이었지만 부모님의 평판이나 주변에서의 인정도 고려한 선택이었죠.

제 노력에 세상이 조금이나마 답해준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다만 카지가 말하는 것처럼 어른이라는 것이 조금은 둥글둥글해 질 필요가 있는데

이게 또 쉽지 않은 일이더군요.

공부 중에 종종 그만하고 싶다는 욕망이 들어서 푸념을 섞어 적어봅니다. 


이제 저도 더이상 저 자신만이 원한다고 해서 그것을 할 수 있는 시기를 한참 지나고 말았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학업을 계속해서 결국엔 이걸로 먹고 살아야 합니다.

이제는 정말로 어른이 되어야 하는 거죠.

요즘처럼 인생에 있어서의 동반자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현실은 OTL)




마지막으로 깜짝 놀란 것이 
 
2008년인가에 에반게리온 파 OST 가사들을 제가 직접 번역해서 블로그에 올렸었는데

며칠 전에 갤럭시노트 휴대폰으로 파 OST 듣다가 제가 번역한 가사가 올라와서 깜짝 놀랐습니다.

처음에는 이상하게 생각했었는데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아서 찾아보니 제가 오역한 부분까지 그대로 올라왔더군요.

이게 좋은건지 나쁜건지 판단이 안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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