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부실습, 마취시험, 결혼식축주연주 [기록]

이번주는 해부학실습을 했다.

본과 1학년 때 이후로 첫 해부학 실습이었다.

병원 실습 중에서 선택실습이 있는데 기초과목 중에서 해부학을 골라서 1주일 동안 돌게 된 것이었다.

선배님들이 개원한 로컬 병원과 마취통증의학과 실습을 뛰면서

역시나 정말 중요한 것은 해부학이구나라고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특히나 환자에게 침습적인 시술을 할 때에는 정확한 해부학 지식이 있어야만 자신있게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마취통증의학과 실습을 돌면서 기관 삽관, 동맥혈 채혈, 정맥혈 채혈을 하게 되었는데

제대로 아는 것이 없으니 막상 시켰을 때,

교감 신경이 활성화화 되면서 눈 앞이 하얗게 되고 머리속은 엉망진창이 되며 심장이 쿵쾅쿵쾅 뛰는데,

혹시나 환자에게 해가 가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두려움에 벌벌 떨게 되고 마는 것이었다.

그 때 문득 느꼈던 것이 나의 해부학적 지식이 너무나 부족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것이 이번주 해부학 선택실습을 돌게 된 계기였던 것이다.


1학년들의 본격적인 해부실습이 이번 주였기 때문에 교수님들이 시키는 일을 하느라 정말 눈코뜰새 없이 바빴다.

특히나 어제 추모식을 하는데 내가 1학년 때의 일이 갑자기 생각나는 것이었다.

이제는 카데바를 봐도 익숙하고 하나의 실습의 대상으로서 생각하고만 있었는데

갑자기 이것이 살아서 숨을 쉬던 실제 사람의 몸이었다고 생각하니 무엇인가 숙연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제 고작 3년 째 공부를 시작하는 데 정말 중요한 무엇인가를 잊고 지냈던 것이 아닌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아직 나는 멀었구나라고 다시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오늘은 수술방에서 기관삽관 시험이 있었다.

마취통증의학과 실습을 돌면서 실제 수술을 받으러 수술실에 들어온 환자들에게 기관삽관을 할 기회가 총 4번 있었다.

1번은 레지던트 선생님이 도와주셔서 성공할 수 있었고, 나머지 3번은 처음부터 내가 시행했는데 모두 실패해서

어쩔 수 없이 레지던트 선생님이 다시 시행을 했다.

(환자분에게 최대한 무리가 가지 않는 범위에서 했습니다. -- 오해가 없으시길 바라며...)


환자는 마취상태로 들어가고 근육이완제가 작용해서 스스로는 호흡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기관삽관을 시행하는 것이다.

기관삽관하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리면 환자의 혈중 포화 산소 농도가 감소하기 때문에 자칫하면 브레인 데미지를

받게 될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인 것이다.

책을 보고 배우면서 머리로 상상할 때에는 별로 어렵지 않겠구나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실제로 해보니 세상일이라는 것이 쉬운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실제 선생님들이 하는 것을 보면 전혀 어려움 없이 기관으로 튜브를 슥슥 집어 넣는데

역시나 이래서 의술을 아트(Art)라고 하는 것이 아닐까?

과학(Science)처럼 반복적으로 재현가능한 일과는 다른 성격의 작업이다.)



어제는 해부학 추모식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급박한 요청을 받았다.

오늘 결혼하는 선배의 결혼식 오브리 부탁을 받은 것이다.

의학을 공부하면서 느끼는 것은 언제나 '돌발상황'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옛날 같았으면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을 텐데, 이제는 어떻게든 가능하게 하는쪽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긴급하게 동아리 멤버들을 모아서 밤을 지새며 연습을 했다.

다음주가 시험이어도 그런 것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다행히 오브리가 한 두번 뛰는 일이 아니다.

레퍼토리도 다 알고 있고 중요한 것은 호흡을 맞춰서 익숙해지는 것뿐이다. --;;;

더 큰 문제는 마취과 시험을 보고 식장까지 제 시간에 맞춰서 들어갈 수있느냐였다.

결국 결혼식 시작 5분 전에 간신히 들어가서

연습 없이 오브리 연주를 했고

결론은 ......................--(묵념)

형 정말 죄송해요.

그리고 감사해요. (오브리 연주비를 받아 돈을 새보며...)

그리고 다시 한 번 축하합니다.


첫 병원 실습의 충격 [기록]

이번 주 부터 병원 실습을 돌고 있다.

첫 날은 힘들어서 기숙사에 오자마자 바로 쓰려져서 다음 날 겨우 일어날 수 있었다.

어제까지도 힘들었는데 오늘은 익숙해졌는지 그럭저럭 견딜만 했다.


이번 주는 원외실습이라 자교병원에서 받는 스트레스보다는 그나마 덜한 편이다.


하지만 나는 첫 날 돌았던 내과실습에서 매우 충격적인 경험을 하게 되었다.

오늘 들은 바로는 이번 주 월요일 내과 외래 환자수가 근래에 기록적인 숫자였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절대 잊을 수 없었던 경험은 간암 진단을 받은 환자였다.

원장님은 환자분이 술을 굉장히 많이 드셨다는 점과 눈의 공막의 황달 증상을 보고 간경화를 의심하셨다.

더욱 놀랐던 것은 혈액검사와 CT 영상 검사에서 간암으로 진단할 수 있는 개연성 높은 정보들이 발견됐던 것이다.


환자를 많이 보시는 원장님도 소홀히 하실 수 없어서 다른 원장님들에게도 물어보시고 영상소견을 몇 번이나

재확인하시더니 나에게 아무래도 간암환자가 확실하며 통보를 해야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때까지만 해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첫 실습의 긴장때문이었는지 내 머리 속에는 간암의 진단 기준이 무엇이었나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벅찼던 것이다.

왠지 물어볼 것 같은데 답변을 못할까봐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현실로 돌아온 순간은 다시 환자가 진료실에 들어왔을 때였다.

원장님은 결심을 하신듯 '통보'를 하셨고 환자분은 매우 충격을 받은 듯했다.


간암의 치료법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유일한 완치법은 외과적인 절제뿐이며

이마저도 간경화가 심하게 진행됐을 경우 수술은 제한적이다.

수술이 성공적으로 수행되더라도 5년생존율은 70퍼센트, 10년 생존율은 50퍼센트정도이다.

이 환자분 같은 경우는 간경화가 많이 진행된 상태로 수술도 매우 힘들어보이는 상태였다.


환자분은 더이상 말문을 잊지 못하고 진료실을 나가버렸고

같이 오셨던 사모님께서 애원하듯 이것저것 원장님께 묻기 시작했다.

원장님은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실 수밖에 없었고 위로의 말씀을 하실 뿐이었다.



앞으로 이런 일들을 계속 겪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많이 답답해졌다.

나는 '죽음'이란 불평등하고 부조리한 세상에서 누구에게나 유일하게 평등한 사건이라고 믿고 있었다.

이 생각은 지금도 변하지 않고 있다.

다만 죽음을 겪는 과정까지 모두에게 평등하지는 않다.

죽음이라는 결과만이 모두에게 평등할 뿐이다.


나 또한 어떻게 될 지 모르기에 더욱 답답해져만 간다.






 


부끄러움

곰곰이 생각해보건대

나에게 자기애적 성격장애가 있다고 강하게 의심해본다.

이런 성격이 타인에게는 짜증을 유발하고 그것을 알게된 스스로에게도 괴롭다는 것을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주의하고 또 주의하는 것을 잊지 않았건만 역시나 결정적인 부분에서 제 성격 남 줄 수는 없는 노릇인가 보다.


최근 내 머리 속에는 잔뜩 '돈'에 대한 상념으로 가득차 있다.

이제는 이런 생각들이 당연하지 않냐는 나름 자기 합리화도 하고 있다.


보통 사람들은 돈에 대해 이중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돈은 그야말로 모든 욕망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만능의 수단으로써 인식되기도 하고,

동시에 더럽고 치사한 인간의 천박한 욕망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써의 이미지도 있다.


며칠 전 사회대학 교수님의 강의에서 의사들은 의료서비스의 공급자라기보다는 수요자에 더 가까울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다.

전문의를 따기 까지의 과정에 들어가는 학비와 앞으로 개원해서 나가게 될 돈을 생각하면

의사들은 결국엔 수요자에 더 가깝다고 생각된다. (교수님은 중간자라고 표현했음)


나는 '돈'으로 행복을 사기가 매우 힘들 것이라 믿고 있다.

실제로 돈은 재화를 구입할 수 있는 수단에 불과한데 경험을 해 봐서 알겠지만

소비라는 것으로 욕망을 온전히 충족시키기에는 매우 부족하다.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


하지만 '돈'이 없으면 이미 고도로 분업화된 현대 사회에서 생존을 위협받을 수도 있다.

생존에 필요한 재화를 스스로 모두 생산하는 개인은 적어도 자본주의 사회 아래에서는 없는 개념인 것이다.

즉, 돈이 있어도 행복을 보장할 순 없지만,

돈이 없으면 비굴하고 빈궁한 삶과 확실한 죽음의 길로 가게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동료들끼리 토의 수업을 하게 되었을 때,

나는 매우 부끄러움을 느꼈다.

우리에게 주어진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지식의 부족으로 대부분의 조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지식'을 알려주며 문제 해결의 열쇠를 제시한 나이 많은 형이 있었다.

그 분은 나를 비롯한 다른 조원들이 겪고 있는 '돈'에 대한 고민이 없어보였다.

지금은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냐는 그런 태도였다.


이 때 매우 부끄러움을 느꼈다.

초심을 잃었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결국엔 문제에서 제시된 환자를 실제로 만났을 때 그 형처럼 대응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스스로가 너무 우스워졌다.

한 참 속으로 나 자신을 비웃어야 했다.

평소에 그렇게나 기본과 원칙을 강조하면서도 결국엔 말을 돌리고 마는 비열한 정치인들의 모습과 다를 것이 없었다.

'돈'이라는 것이 이렇게나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것인 줄 몰랐다.

아니면 나라는 인간의 한계가 원래 이런 정도였다는 것이겠지...

지금은 점점 멀어지고 있지만

오래 전부터 지녀왔던 '학자'에의 꿈이 문득 생각났다.

정말 너무나 부끄러운 순간이었다.
 


상실 [기록]

나는 모든 것을 상실했다.

텅 비어 버린 가슴.

이때까지 평생 추구해온 학업으로도

음악에의 열정으로도 그 아무 것도 채울 수가 없다.

독서의 즐거움도 잊혀진지 오래

음식은 맛을 상실했다.

잠을 자도 이어지는 피곤의 연속

소비를 해도 채울 수 없는 것은 무엇에 의지해야 하나??


정말 빠졌다. 빠졌어.


군대 [고찰]

아무리 생각해봐도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내 인생의 2년이었다.

지금도 죽여버리고 싶은 선임병이 있으니까...

데스노트가 있다면 바로  이름을 쓰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그곳에는 법도 없고 원칙도 없고 온갖 부조리의 연속이었다.

오기 싫은 사람들 억지로 데려다가 한 방에 80명씩을 욱여넣었으니 그 어떤 일들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으랴...

전역한지 6년 째이지만 아직도 결론을 내리지 못했던 것은

내가 과연 군인으로서의 역할을 잘 해낼 수는 있었던가의 여부이다.

물론 내가 복무한 기간 동안 큰 문제 없이 나라의 안전이 지켜지긴 했지만

과연 내가 열심히 해서 그렇게 된 것일까?


결국엔 우리가 열심히 해서 지켜졌다기 보다는 미국의 힘이 있었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이런 의문들이 있는 것이다.

돈과 시간, 노력의 문제를 떠나 명분과 당위성을 생각해보았을 때,

결국엔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지키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어떤 사람들은  몇 개 강대국을 빼고 자주국방을 하는 나라가 어디에 있냐고 반문하긴 하지만..

내가 어쩔 수 없이 뺐겼던 시간들이 어떻게 보면 아무 의미 없었던 일이었다고 생각하면 이보다 더 허무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내가 여자라면 우리나라 남자들을 신뢰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자기 여자들도 스스로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허약하고 무능한 남자들을 어떻게 믿겠는가?


게다가 나로서는 또 억울한 점이 있다.

내가 이때까지 걸어온 길은 특히나 여성들과의 경쟁이 심했다.

이런 점들에서 아버지 세대들은 아들들을 이해 못하는 것 같아 너무 답답하다.


아버지 세대 때 동시대의 여성들은 직업 시장에서 최소한 경쟁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요즘은 그 적은 일자리를 놓고도 남자들은 군대 갔다오랴 여성들과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하랴

힘들어 죽을 노릇이다.

이런 소리를 하면 남자주제에 무슨 약한 말하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어디서 하소연할 곳도 없는 것이다.


게다가 결혼할 때 집은 남자가 기본으로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서도 시집살이는 이제 하지 않으려고 하고 재산도 공동명의로 하려고 한다면 이것이

도둑놈 심보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인가?

이런 것들이 소위 여성들이 말하는 '혼테크'인 것인가?



이런 말을 하면 여성들은 보통 임신, 출산을 이야기하지...

그런 것들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인정한다.

지금과 같이 의료 수준이 발달하지 않았던 옛날에는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다는 것은 여성 입장에서 목숨을 거는 그런 행위였다.

하지만 지금은 출산시 신생아나 산모의 사망률은 내가 알기론 굉장히 낮다.

최소한 옛날 처럼 결혼이나 출산이 목숨을 걸어야만 하는 그런 선택은 아닐 것이다.

또한 가사일도 냉장고, 세탁기, 건조기, 청소기의 개발로 너무나 쉬워졌다.


나는 군대에서 속옷과 전투복을 겨울에 손빨래 할 때 이렇게 힘들고 고된 일인 줄 처음 알았다.

소위 '짬밥'이 안되서 부대에 있는 세탁기를 돌리지 못하고 손빨래를 할 때는 그렇게나 '문명의 이기'가 부러웠던 것이다.


보통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을 보면 권리에 있어서는 동등성을 요구하면서 의무에 있어서는 회피하는 일반적 경향이 있는데

이것도 나로서는 받아들일 수가 없는 점들이다.

이럴 때면 '국방서비스'라는 것이 공공재라는 것이 그렇게나 아쉬울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국방서비스를 누리는 데에 있어서 그 누구도 배제받지 않고 있고 누군가가 그것을 누린다고 해서

다른 누군가가 누리지 못하는 그런 상황은 없다. 그야말로 공공재이다.

나는 내가 노력해서 제공한 서비스가 내가 제공하고 싶은 대상들에게만 한정적으로 주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으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고위 권력층이나 자본가들은 여러가지 방법을 써서 군대를 회피하고

여성들은 자기들이 받는 국방서비스가 당연히 주어지는 것인 줄로만 알고 있다.


나는 다녀왔다고 어디가서 내세우고 싶지는 않지만  그런 일들이 부정받지 않고 최소한도의 존중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으나 아직도 요원한 일이다. 내 손자 때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정말 이런 생각들을 할 때마다 이민가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다.

내가 생각하기에 한국에서 한국인으로 산다는 것은 더이상 메리트 있는 행위가 아니다. (특히나 남자의 경우)


국제결혼이 더 활성화 됐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

최소한 나는 굶겨죽이지 않을 자신은 있다. --;;;



내가 봐도 스스로가 비참하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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